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뒤 설레는 마음으로 영어권 사역을 시작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저는 혈기 왕성한 20대 중반의 초보 목사였고, 중고등부 학생들과 청년들을 돌보며 나름대로 열정적인 사역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버님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수년 전 아내와 이혼하고 홀로 딸을 키워 오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의 고민은 깊었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밤늦게 귀가하는 등 방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다그쳐 보기도 하고 달래 보기도 했지만, 아이와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딸을 어떻게 훈계해야 할지, 대화의 물꼬를 어떻게 터야 할지 묻고 싶어 하셨습니다.
하지만 대화의 이면에는 그보다 더 깊은 갈망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혼 후 홀로 감당해 온 슬픔과 좌절감,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는 위로의 갈구였습니다.
문제는 목회자인 제가 정작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저는 십 대 자녀를 키워 본 경험도 없었고, 배우자를 잃은 남자의 상실감도 이해하기엔 너무 젊었습니다. 다섯 번 정도 만남을 가졌지만, 제가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원론적인 조언뿐이었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사무실 문을 나서는 그분의 뒷모습을 보며 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오래전부터 교회 역사는 목회자를 ‘영혼의 의사(Physician of Souls)’라 불러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받은 신학 교육은 성경을 정밀하게 주해하고 유창하게 설교하는 훈련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정작 고통받는 사람들의 찢긴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어떻게 싸매고 만져야 하는지, 그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무지했습니다. 어쩌면 신학생 시절, 이론적인 신학에만 매몰되어 상담 수업을 등한시했던 저의 교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사건은 제 사역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성도의 아픔을 구경만 하는 목자가 아니라,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복음의 수술대를 펼칠 줄 아는 목자가 되어야겠다는 절박함이 생겼습니다.
결국 저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성경적 상담 프로그램에 지원했습니다. 공부를 이어가며 깨달은 것은, 성경적 상담이야말로 인간 영혼의 본질적인 죄와 고통의 문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는 ‘실천신학의 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이후 교회에서 수많은 성도님들과 센터에서 내담자들을 만나며 그들의 삶에 복음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목도했고, 결국 상담학으로 박사학위(Ph. D.)까지 마치게 되었습니다.
모든 목회자가 상담 전문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저는 동료 목회자들에게 성경적 상담을 공부할 것을 간곡히 권합니다. 강단 위에서만 선포되는 말씀은 자칫 성도들의 구체적인 삶과 유리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상담하는 목자는 양들이 매일 겪는 치열한 고통의 현장을 이해합니다. 그때 비로소 설교는 공허한 외침이 아닌, 성도의 삶을 관통하는 생명력을 갖게 됩니다.
목자는 양의 곁에 있을 때, 그리고 그에게서 진한 ‘양의 냄새’가 날 때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성경적 상담은 바로 그 양의 냄새를 입는 거룩한 통로입니다. 오늘도 고통의 현장에서 신음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전달되기를 소망하며, 영혼의 의사로서의 사명을 다시금 되새겨 봅니다.
출처 : 크리스찬저널(https://www.kcjlogos.org)
저자: 김다니엘 목사
크리스찬 저널은 저희 부부가 매달 성경적 상담을 주제로 글을 나누는 기독교 저널 공간입니다.





